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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2026 AI·SW중심대학 에세이 공모전

사용설명서, 한 장씩 넘기는 중

대상 · AI·SW중심대학 협의회장상 + AI선정상 · 경북대학교 컴퓨터학부 이상민

1 · 입학 전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저에게는 낡은 휴대폰 한 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5인치 화면 안에서 코드를 한 줄씩 써 내려가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 검색창에 모르는 것을 치고, 에러를 만나고, 다시 고치고. 누가 시킨 적 없습니다. 그저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만드는 것들이 늘었지만, 어느 날 진지하게 만들어 본 서비스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며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는 갈 수 있는 곳에 끝이 있다는 것. 기술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함께 부딪히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환경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알아보던 중 경북대학교 컴퓨터학부가 SW중심대학으로 선정되어, 산학협력 프로젝트와 해외 인턴십, SW마일리지 같은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더듬거리던 저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사용설명서였습니다. 2023년 봄, 입학했습니다.

2 · 입학 후

입학 후,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SW중심대학이 여는 문이 있다면 무조건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SW마일리지 제도였습니다. 활동을 기록하고 점수화하는 단순한 시스템처럼 보였지만, 저에게는 자신을 점검하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TOPCIT 시험에 매 회차 응시하며 제가 어디쯤 서 있는지 확인했고, 부족한 영역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다음 학기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매번 긴장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응시했습니다. 그 반복의 끝에 교내 1등, 총장상이라는 결과가 따라왔지만, 상보다 값진 건 꾸준히 자신을 측정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입학 후 처음 나간 대회는 SW교육원이 주최한 창업해커톤이었습니다. 개발에는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시간, 옆 팀의 발표자가 청중의 눈을 하나하나 훑으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주제인데 그쪽에만 사람이 몰렸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펼쳐 코드를 보여주며 설명했지만, 심사위원의 시선이 이미 멀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만들 줄만 알았지, 왜 만들었는지를 말하는 법은 몰랐던 것입니다. 사용설명서의 첫 페이지가 기술이라면, 두 번째 페이지는 소통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부족한 소통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전국 연합 IT 동아리 멋쟁이사자처럼에 들어갔고, 3년간 활동하며 나중에는 BE Officer로서 직접 대학생들에게 Java와 Spring Boot를 가르치는 자리에 섰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술을 설명하려면, 내가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의 연장이었고, 동시에 말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확실한 훈련이었습니다. 그 훈련 덕분이었을까요. 과학기술전문사관 면접장에서 “왜 이 기술이 필요한가”를 설명했을 때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해커톤 무대에서의 그 막막함이 비로소 힘이 되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산학협력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주)해피에이징과 함께 노인 낙상 방지 서비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고, 저는 Technical Lead를 맡았습니다. 위험을 감지하는 AI부터 어르신의 손에 쥐어질 앱까지, 서비스의 처음과 끝을 직접 만들어 Google Play에 내놓았습니다. 테스트 중 실제 어르신 한 분이 앱의 알림을 보고 안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코드 한 줄이 누군가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났습니다. 교실 안의 과제와는 무게가 달랐습니다.

그 무게를 더 넓은 곳에서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SW중심대학의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 소재 미국계 IT 기업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니어 개발자가 제 코드를 리뷰하며 “Why did you choose this approach?”라고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는 답이 맴도는데 입이 따라가질 않았습니다. 그날 밤 숙소에서 기술 영어 표현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느꼈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3 · 진로 및 향후 계획

돌아보면 저는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수십만 건의 실시간 데이터를 다루는 시스템부터 앱스토어에 올라간 서비스까지, 손이 닿는 곳마다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만드는 일 너머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어진 것을 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KAIST 차세대 SAR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논문 한 편을 제대로 읽는 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코드를 짜는 것과 기술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몰입이었는데, 오히려 그 막막함이 좋았습니다. 연구실에서 쌓은 결과물을 들고 나간 밀리테크 챌린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을 때, 개발자가 아닌 연구자로서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과학기술전문사관 11기로 선발되어 졸업 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저는 확장현실(XR)을 연구하려 합니다. SW중심대학에서 산학협력과 해외 인턴십을 통해 기술이 현장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배웠기에, 연구실 안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5인치 화면이 전부였던 아이가 이제는 현실 너머의 세계를 설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SW중심대학이라는 사용설명서를 한 장 한 장 넘겨온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SW중심대학은 저에게 사용설명서였습니다. 혼자 더듬거리며 걸어온 길 위에, 방향을 알려주고 속도를 내게 해준 안내서. 다만 이 사용설명서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펼쳐야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펼친 사람만이 다음 페이지를 쓸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글이, 누군가에게 사용설명서를 펼쳐볼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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